조회 수 : 1139
2014.11.28 (08: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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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보류의 영성





너는 네 말만 하고 / 나는 내 말만 하고
같은 장소 / 같은 시간에 /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되는 벽을 느낄 때
꼭 나누고 싶어서 / 어떤 감동적인 이야길
옆 사람에게 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나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 가장 가까운 이들이
그것도 못 참느냐는 눈길로 / 나를 무심히 바라볼 때
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며 / 화해의 악수를 청해도
지금은 아니라면서 / 악수를 거절할 때
누군가 나를 험담한 말이 / 돌고 돌아서 / 나에게 도착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롭다 / 쓸쓸하고 쓸쓸해서 하늘만 본다

- 이해인의 시 <내가 외로울 땐> -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많이 결심하는 것 중에는
남을 함부로 속단하지 않기,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남에게 전하지 않기,
남을 흉보거나 뒷 담화하는 일에 끼어들지 않기가 꼭 들어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한 수녀님의 결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나도
거들었다가 잠시 후에 바로 뒷담화의 당사자를 만나니 그가 들은 것도 아닌데
어찌나 맘이 불편하고 켕기던지 하루 종일 쓰디쓴 괴로움을 맛보았습니다.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남을
모질게 판단하고 부정적인 말을 쉽게 퍼뜨리면서도 큰 잘못이란 의식 없이
살고 있는지요. 오래전 비교종교학을 공부할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종교를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된다는 ‘판단보류의 영성’에 대해 배우며 깊이 공감했고,
이것은 나의 수도생활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름이 조금 났다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수십 년간 내가 들어왔던
온갖 말들 (악플을 포함해)을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빠지곤 합니다.
그중에는 내가 실수하거나 원인제공을 한 것도 있으나, 어느 땐 정말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돌아다녀, 일일이 변명도 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성소의 위기까지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뒷 담화는 우리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듭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구체적으로
다 알게 된다면 과연 친구가 몇 명이나 남게 될지 의심스럽다는 책의 한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내가 다른 이의 이런저런 말로 상처를 입고 힘들었듯이, 나 또한 많은 말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를 괴롭고 외롭게 한 날들이 부끄러워 참회의 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이요 임금으로 선택하고 모시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절대로 다른 이의 등 뒤에서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에게 터놓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끝에 나는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함부로 다른 이를 험담하는 악습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판단의 말은
보류하되 사랑의 행동은 빨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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